시를 쓸 때 가장 혼란을 주는 것은 표현의 문제이다.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심을 너무나 여러번
해야 하는 것이다. 시를 좀 쓴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표현 부분에서 상당한 실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말처럼 사물이나 대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창의성이 돋보여야
하고 감각적인 언어의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 선천적으로 언어를 살려 쓰는 사람들이
있으나 대부분은 표현의 문제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표현하여야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시인이라는 선각자로서 아니
선각자가 아니더라도 어떻게 표현하여야 독자들이 ‘문제를 느끼고 깨닫고’ 정신적으로 ‘위안과 위로’를
느끼며 생활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 시가 가진 여러 가지 기능 중에 사람들로 하여금 ‘견디어
내는’힘을 갖게 하는 것은 어떤 표현일까? 이는 언어를 고르고 골라서 창의적인 표현으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길이나 항해는 흔히 ‘인생’에 비유된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하지 않았고’(나짐 히크메
트의 ‘진정한 여행’ 중) 라는 싯구가 있다면 긴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여 아직 끝나지 않은 인생의 의미를 일
깨우고 있다. ‘푸른 트럭’이라는 표현이 있다면 트럭은 대단히 희망을 일깨우는 단어가 된다.
일반적으로 ‘푸른’에 대비되는 색상의 의미는 당연히 희망이기 때문이다. ‘풀잎 묻은 밥그릇’이란 표현은
자연의 풍경속에서 먹는 밥이라는 의미가 형성되어 따뜻하고 풍요로우면서도 소박한 밥을 대표한다.
이처럼 표현은 어떤 방식으로 쓰이느냐 보다는 어떻게 읽히느냐가 중요하다. 다시말해서 쓰는 사람의
주관적 인상보다는 읽는 사람의 주관적 인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교육도 수용자 중심의
교육이 행하여 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시도 쓰는 시인보다는 읽는 독자의 입장을 배려하면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쓰는 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독자들도 성장
을 하여 상당히 고난도의 논평을 하고 있으며 사회가 전문화되어 점점 더 시를 쓰는 전문가적 견지를 요구
하고 있기도하다.
낙엽 쓸린 누더기 옷 벗어 던지고
추운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반으로 쪼개지는 고통 안으로
짜디 짠 소금 몸 위로 쏟아져 숨을 멈춘다
눈물 한 바가지, 안에 숨어있던
호흡 모두 날려 버렸다
매끈한 몸을 어쩌면 처량해진 속을
매콤하게 다져진 양념으로 채워본다
버무려진 몸이 채워지니 따뜻하다
민망한 속살에
스며드는 짙은 가을빛 물결
칸칸이 들어앉은 동숙인들은
비좁은 공간에 불만을 토로하다
한 겨울 보내기엔 좁다래야 좋다며
서로의 온기를 뿜으며 껴안는다
겨울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 받기 며칠 전
푸르렀던 젊음이 한 포기 한 포기 쌓여
깊은 땅 속에 몸을 눕힌다.
- <김장>, 학생의 시
시를 습작하고 있는 학생의 시이다. 상당히 습작을 해온 듯 시어를 고르는 솜씨가 나타난다. 의인화 수법을
써서 배추의 모습을 구체화시키기도 하였다. 나름대로 다소 다듬어진 시어들을 사용하여 김장하기 전의 배
추절이는 상황과 김장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배추를 다듬는 것을 ‘누더기 옷 벗어 던지고’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배추가 의인화되어 차가운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고 주체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의인화된 표현을 통해 행동의 주체가 되어 직접 몸을 차가운 물에 던지는 것 같은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반으로 쪼개어져 소금이 뿌려지고 배추는 숨이 죽는다. 얼마후 배추는 양념들을 사이사이에 넣고
김치가 되어 좁은 공간에 들어 간다. 이러한 김장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주체적인 표현으로 일관하여
능동적인 행동이 드러난다. 의인화는 이렇게 주체적인 표현을 하기에 알맞다.
그러나 여기에서 김장을 당하는 배추의 입장과 시를 쓰는 시인의 입장이 혼재되어 있으며 상황에 제3자의
입장까지 나타나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3연의 ‘칸칸이 들어앉은 동숙인들은/비좁은 공간에 불만을 토로
하다’는 부분에서는 제3자적 시각이 드러나 의인화된 주체적인 행동양상이 사라지고 ‘한 겨울 보내기전~
서로의 온기를 뿜으며 껴안는다’에서도 주체적인 행동이 없어 혼란스럽다. 마지막 연에서는 다시 의인화된
주체가 나타나 억지스러운 배추의 모습이 표현된다.
시를 습작할 때 흔히 나타나는 양상으로 시점의 혼재와 행동주체의 혼란이 있다. 이때에 이 시를 읽는 독자
들도 그대로 그 혼재와 혼란을 겪으면서 주제를 혼돈하게 된다.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는지 논점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 혼란을 겪으면 독자는 당연히 혼란을 겪는다.
시인이 정확한 표현을 하지 못하면 독자도 당연히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독자를 생각하면
서 어떻게 읽힐 것인가에 주목하여야 한다.
표현하기의 주체는 시인이지만 표현된 것을 읽는 이는 독자이므로 양자가 함께 소통의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여기서 소통이란 앞서도 논의하였듯이 ‘쉽게 뜻이 통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어려운 표현을 하고
고도의 상징을 써도 그 뜻이 독자와 통하였다면 그것이 진정한 소통의 의미이다.
현대인들은 지적인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처럼 책을 많이 읽지도 않으며, 책을 통해 소통
의 도구로 삼지도 않는다. 책보다는 영화나 다른 메신저들을 이용하여 소통을 하고 있는 미디어의 시대이
다. 때문에 지적인 허기를 채우려고 긴 문장의 소설이나 철학을 접하기 보다는 짧으면서도 의미있는 문장
이나 싯구를 읽고 싶어한다. 정치인들은 사자성어를 통해서 자신들의 정치성향을 드러내어 지적인 영역을
드러내기도 한다. 만약 정치인이 쉬운 한자성어를 선택하여 의미있는 말을 하고자 한다면 그 의미는 줄어
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적이면서도 의미있는 한자성어를 구사한다면 그것은 회자되기에 이르는 것을
흔히보지 않는가?
우리는 선뜻 쉬운 것을 취하고 있지만 그러나 가슴 한 켠에는 정신적인 허기를 채우지 못해서 유식한 것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터키의 혁명시인이라 불리는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의 옥중시<진정한 여행>
을보면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면서 옥중 창문을 통해서 바라보는 희망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詩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낯선 이름이지만 그가 노래한 끝을 알 수 없는 방황과 진정성에 대한 탐구는 비판과 좌절이 횡행하는 세에
게 아직도 진정한 여행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므로 어떠한 절
망의 자리에 있더라도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고 가
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날은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특히 이 시는
사람들이 갈구하는 진정성에 깨달음을 주고 있다. 확실하게 나타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아직’ 이라는 말
은 미래적인 시간을 지칭하고 있다. 미래의 시간에 어떤 의미로 그것은 희망이 되는 것이다. 에른스트 블로
흐가 말한 여기가 아닌 ‘미래’의 시간을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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