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원 > 시작교실 > 시어(詩語)는 직접 진술이 아니다

본문 바로가기

사단법인 푸른세상


사단법인 푸른세상
문학과 예술의 창작활동을 통한 푸른세상의 정신문화 구현

교육원

HOME교육원시작교실

시작교실

시어(詩語)는 직접 진술이 아니다
조회 : 13,350
(사)푸른세…
2012.04.1706:34
시어(詩語)는 직접 진술이 아니다.
김 신 영┃본지 편집장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겪는 오
류나 시행착오는 직접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시를
함축과 압축이라고 말한다. 이는 시가 직접 진술에서는
그 의미가 풍부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단어 하나만 함축적
인 뜻을 지닌다고 해서 그 시가 압축이나 함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
가 일상생활에서도 관용적인 표현이나 비유적인 의미는 늘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에서 함축적인 단어나 어구를 썼다 해도 직접 진술을
많이 쓰는 것은 일상에서 쓰는 언어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된다.
시인은 언어를 갈고 닦을 뿐만 아니라 의미의 애매성이나 비유와 상징을
통해 풍부한 의미의 형성에 이바지해야 한다. 하나의 시를 살펴보면서 이해
를 돕기로 한다.
동지섣달 팥죽은
아버지의 것 이었다
아니, 아버지가 팥죽을 끓이면
모든 계절이
동지섣달 깊은 밤이 되었다
젊은 날 노동판에서 굵어진 손마디와
굳어진 어깻죽지가 제일 좋아하였다
무좀 걸린 발가락과 버거운 다리가
더욱 좋아하였다
유년 시절,
어머니는 세상에서
아버지의 팥죽이
가장 달콤하다고
잦은 푸념을 늘어 놓았다
팥죽은 밤마다 시끄럽게 끓어 대었다
고양이도 팥죽을 얻어먹고
조용해진 밤이었다
-「 가장달콤한팥죽」(2010년창조문예3월호)

이 시에 등장하는‘팥죽’은 붉은 빛깔을 띠는 동지섣달의 팥죽이 아니다.
팥죽 끓는 소리처럼 시끄러운‘코골이 소리’이다. 코골이 소리는 피곤의 상
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인생들이 지쳐서 잠이 들고 코를 골다가 지친 육
신을 이끌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나가지 않는가.
그러나 시인은 코골이를 직접적인 표현으로 쓰지 않고‘달콤한 팥죽’에
비유하여 그 인생에 휴식과 잠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직접 팥죽을 설명하지도 않으며 실제의 팥죽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의 곤한
잠의 모습을 긴 밤의 상징인‘동지섣달’팥죽으로 나타내었다. 편안하고 긴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동지섣달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가장들이 코를 많
이 곤다고 하겠다. 코를 고는 가장들의 달콤한 잠에 축복 있을진저!
직접적인 진술을 하지 않고 시어를 다듬는 일은 시인이 갖추어야 하는 첫
째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시어를 고르면서 어떤 비유나 상징을 통해 의미를
풍부하게 깊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학술문이나 논술, 논설, 설명문
등은 직접적인 단어로 의미를 분명하게 써야 한다. 그러한 문장에서 애매한
용어를 나열한다면 그 의미는 분명하지 않고 여러 해석을 낳아 좋은 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문학적인 언어는 그 의미가 여러 개 겹칠수록 그 의미가 풍부하여
지고 인간의 인지활동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인간의 사고가 깊어질 수
있는 것은 단어를 통해 얻어지는 의미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학
의 언어는 다의미를 추구한다. 일대일로 대응하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단
어에 여러 뜻이 압축되어 그 단어가 분산될 때 많은 의미를 남길 수 있으며,
훌륭한 시어라 할 것이다. 흔히‘눈’이나‘바람’은 시련을 상징하는 것과 같
다. 시련의 의미는 인생에 있어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시련을 겪으면서 인
간은 많은 것을 느끼며 만나게 되는 현장성을 시각적으로 실감하게 되기에
시에서 의미의 함축성은 강조를 거듭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개인적으로 시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지적해 주고 싶은 사항
은 바로 이것이다. 객관적 상관물인 어떤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서
표현한다면 더없이 좋은 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남
들이 썼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의미를 시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울새는
230•아시아문예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며,
주인집 문 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쫓기는 토끼의 울음소리는
우리의 머리를 찢는다
-「 순수의전조」중에서/ 윌리엄블레이크

천재시인이자 화가로 알려진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 시는 너무나 유명하
다. 이 시에서‘한 알의 모래’가 상징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모래에 우주가 있음을 선포한다. 또한‘한 송이 들꽃’으로 상징되는 것
은 아주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이다. 이 완벽한 꽃의 세계는 천국의 모습으
로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그대 손바닥’은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 무한이
있다는 표현은 그 의미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청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시구이다. 그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순간’속에서
‘영원’을 바라보라는 것은 큰 희망이자 위대한 포부를 의미한다. 블레이크
의 이 시에서는 상징성이 많이 나타나 그 의미의 해석에 고심하여야 한다.
그 의미를 해석하여 보면 이 시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시구에 담고 있으며
위대한 것을 표현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시란 바로 이처럼 하나의 시어
에 많은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많은 의미가 하나의 단어에 응
축될 때 시는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김신영│시인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불혹의 묵시록』등. 홍익대 강사. 본지 편집장



이전글 

푸른세상소개문학과예술교육원국제문화기부금현황공지사항
TOP
국세청 무료홈페이지제작 씨피이코리아 중소기업 소상인을 위한 한국중소기업협의회